개인적 공간

진정한 어른

조금씩 차근차근 2025. 9. 4. 23:05

나는 똑똑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는 선풍기 모터 제작 공장에서 모터의 전압만 측정하는 일을 시작한 뒤로 항상 염원하던 일이었다.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과, 높은 연봉에 대한 갈망이 이런 것들을 원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똑똑해 보이는", "화이트 칼라"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엔 멍청이 취급을 받을 때 나 자신에게 화나고 분노만 가득했고,
"이곳을 탈출하자"와 같은 열등감과 분노만 가득했다.

 

따라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뿌리칠 수 있는가?
  • 나의 목표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가?

근래에 발생한 여러 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내면에서 수시로 받았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판단을 수행했다.

 

내가 내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가족의 고통은 내 일의 의미를 지워버렸고,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지난 날에 대한 후회만 남았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앞에 닥친 상황은 피할 수 없었다.

 

모든 일에 의미는 있었다.
다만 내가 저평가했을 뿐이었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에서 HUB 공정을 하면서 다양한 연배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다.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또한 그 안에서 전해 내려온 노하우와 기술은, 결코 일차원적이거나 단순하지도 않았다.
자키를 빠르고 안전하게 다루기 위한 팁과 노하우는 디테일했고,
얼음물을 빠르게 녹이기, 업무를 단순하게 만들기, 짐 래핑 시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방법, 박스 테트리스는 결코 단순하지도 않았다.

 

그분들도 똑똑하지 않아서, 배움이 부족해서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필요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 주변 동료들을 돕고 있었다.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어른은 사회인으로써 '스스로 돈을 벌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진정한 어른은, "군말없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여유"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