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공간/독서와 사색

"잘 쉰다"는 것의 의미

조금씩 차근차근 2026. 4. 8. 22:00

무사히 배포를 마치고, 아주 잠깐의 여유를 가진다.

이 배너, 내가 (다른 방식으로) 띄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었다.
이 방식이 맞는지, 저 방향이 타당한지, 이 사람의 제안을 따를지 말지.

 

문제는 이 결정들이 전부 내가 원해서 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판단의 시야가 좁아지는 문제

일을 하다 보면 장벽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이걸 하자"고 한다.
하지만 난 힘들다.
그래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고, 뛰어난 결과를 낼 수 있는 선택지만을 밀어붙인다.

 

이러한 논리적인 기준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 그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기존에는 같이 하는 사람과 "왜 이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Sync를 충분히 맞추고 시작했다.
그래서 그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현재는 다르다.

  • 일을 하는 방식의 완성도와 기준점이 너무 낮다.
  • 궁금증이나 반대가 없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이 사람은 언제 반대하는가?
  • 모든 근거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의 다수결로 결정하면, 언제 변화하는가?
  • 제품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기나 한 건가?

이 상황에서 "전 이걸 이 정도 수준까지 하고 싶습니다"라고 혼자 이야기해봤자,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안 된다.

내 의견을 설득할 시간이 없어 빠르게 다수결로 결정하고,
그렇게 타인의 동기에 집중하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기대받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 한다.
기준에 대한 Sync도 안 된다.
그렇게 나와 타인의 동기가 뒤섞여,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게 된다.

  •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 근데 지금 그거 할 때가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중요한가?
  • 내 생각엔 이게 가장 맞는 것 같은데

결국, 타인의 동기에 맞춰 그에 맞는 해결책을 결정해 버린다.

 

개인적 대화에서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넌 결정을 빨리 내리긴 하는데, 그래서 네가 뭘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뭘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뭐라도 결과물을 꾸준히 내길 원한다.
블로그도 꾸준히 쓰고, 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한다.
쌓아놓은 결과물이 후회가 된 적은 없으니까.


결정 피로 - 판단에 대하여

지금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결정 피로다.

 

모든 핵심적, 논리적인 의사결정이 나에게 양도된다.
"모르니까 좀 물어볼게요"가 아닌, "모르니까 대신 결정해주세요"가 될 때 오는 피로감.

 

이 피로를 이해하려면, 판단의 종류를 MECE하게 나눠볼 필요가 있다.

 

판단의 주체

이성적 판단

  • 이 방식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
  • 이 방식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감성적 판단

  •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 이 방식은 모두가 행복해지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기준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살짝 관점을 바꿔보자.

판단의 종류

동기를 결정하는 판단

  •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 이 방식은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

  • 우리는 우선 이 지표를 최적화해야 한다.
  • 우리는 모두를 위해 이 결정을 해야 한다.

"쉰다"는 것과 판단의 관계

판단이 언제 "쉰다"는 개념에 영향을 주는가?

 

주로 동기가 되는 것들이다.

  •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 "이 방식은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그런데 왜 이것이 휴식이 되지 않는가?

  • 내가 물리적으로 "된다/안 된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다.
  • 근데 내가 "힘들다/할만하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어렵다.

그렇게 나는 한번 더 생각하고 말을 삼킨다.

  • 힘들어해도 되나?
  •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조직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나?
  • 함부로 뱉은 말이 정치적 발언처럼 흘러가진 않나?

그래서 뭘 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다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 대로만 살 수는 없다.

회사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을 요구한다.
최대한 중요하고 비즈니스 임팩트가 큰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것.
그러면서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말 것
그러면서 창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는 것

 

이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히 나도 성장하고 있고,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 가능하다는 것은 느껴진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불필요한 감정까지 요동치고 있어, 이를 쳐내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고 있다.

 

현재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쉬는 게 효율적인가?
영화를 보든, 만화를 보든, 핵심은 하나다.

 

나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혼자서 생각하고 끝내면, 검증이 불가능하다.
결국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내 능력을 의심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힘들다"라는 감정이, 정말 힘들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확인.

  • 단순히 "힘든 거 맞아!"라고 낮은 기준 속에서 안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 정말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현재는 힘들 법하다는 인정을 받는 것.
  •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힘들어서 잠깐만 쉴게요" 라는 감정을 검증받는 것.
    • 나 없이도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것.
  • 단순히 내가 일을 못해서 힘든 건지, 아니면 원치 않는 결정들을 떠안는 것이 원래 힘든 게 맞는 건지.

힘들다고 하면 뭐가 달라지는가

힘들어야 한다고 하면

  • 상황을 바꿔본다.
    • R&R 분리
    • 결정 사항들에 대한 예/아니오 응답
    •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해 줄 것을 요청하기
  • 조금 힘들다고 이야기하기
  • 업무 분장을 옮겨줄 것을 요청하기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

  • 좀 더 노력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 직접 최대한 많은 결정을 내리고, 올라오는 결정 사항들에 대한 최대한 깊은 이해와 합의.
  • 무작정 "힘들다"는 감정에 던져놓는 것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는 것.

이 방향이 결정되면, 나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매번 확인받을 것인가?

매번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감정을 무시하고, 계속 몰아붙여 왔다.
이런 과정을 한 번쯤 거쳤지만, 결국 감정을 무시하고 해내는 방식으로 동작해 왔다.

 

근데 계속 할 수 있을까?

몇 년째 해오는 걸 보면 잘 해왔긴 한데,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사람이기에, 항상 언제 무너질까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그래도 같은 상황에 대한 반복은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을 학습시킨다.

결국은 몇번은 물어보며 그 기준을 학습해야 한다.


결론

나는 "내가 잘 못하는 정답이 없어 보이는 부분에 타인을 들이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이 부분을 삼켜왔다.

  • 기존에 알던 사람들은 애초에 이걸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확인받기엔, 신뢰도가 모자라다.
  • 그래서 매우 천천히, 매우 조금씩만 열고 있다.

지속적인 관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 특성인 만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인 듯하다.

어쩌면 내가 회사에서 배워야 하는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매니저님께, 내가 힘들 때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그래도 혼자 쉴 때, 하고 싶은 것들은 지금도 있다.

  • 생각 정리하기
    •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
    •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
    • 현재 나의 위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 지금 잘 하고 있다.
  • 그림 그리기
    • 빠른 시간에 빠르게 획득한 것은 기억에서 빠르게 소거된다.
    •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보고 마음 쓴 것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긴 시간 써서 기록하면, 볼 때마다 기억에 오래 남으니까.
  • 해커톤
    • 내가 멈추면 전부 멈추는 곳이 아닌, 내가 멈춰도 잘 돌아가는 곳에서 "잠깐 쉴게요"라고 말해보는 것.
    •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멈추는 방법을 배우는 것.
    • 어쩌면 가장 "쉰다"를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일 듯 하다.

이것들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