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문제" - 리처드 파인만의 편지
구독 중이던 포스트를 읽던 중 위 영상으로도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의 좋은 인용구가 있어 글을 작성해본다.
리처드 파인만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 도모나가의 제자이기도 했던 옛 제자 코이치 마노가 축하 편지를 썼다.
파인만은 마노 씨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답장을 보냈다.
이에 대한 코이치 마노의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난류 대기를 통한 전자기파 전파에 대한 몇 가지 응용을 포함하여 결맞음 이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현실적인 유형의 문제입니다."
이에 파인만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Koichi에게,
자네에게서 편지를 받고, 또 자네가 연구소에서 그런 자리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는 매우 기뻤네. 그런데 편지 내용을 읽어보니 자네가 정말로 슬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안타까웠네. 자네 스승의 영향 때문에, 무엇이 가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 듯하네.
가치 있는 문제란, 자네가 정말로 풀 수 있거나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들, 자네가 실제로 무엇인가를 보탤 수 있는 문제들이네. 과학에서 “위대한” 문제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우리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파고들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문제를 말하지.
내가 자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자네 말대로 ‘보다 겸손한(humble)’ 문제들이라도 좋으니, 자네가 정말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찾을 때까지 훨씬 더 단순한 문제들부터 다시 시작해 보라는 것이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말이야. 그러면 자네는 성공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고, 비록 자네보다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동료의 마음속 질문 하나를 풀어주는 것뿐이라 해도, 동료 인간을 도왔다는 기쁨을 느끼게 될 걸세.
자네는 무엇이 가치 있는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기쁨들을 스스로 빼앗아 가선 안 되네.
자네가 나를 만났을 때는, 나의 경력이 한창 절정에 있을 때였고, 자네 눈에는 내가 마치 신들이나 다룰 법한 문제들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에겐 또 다른 박사과정 학생이 있었지. (Albert Hibbs라는 학생이었네.) 그는 바람이 바다 위를 불어갈 때 어떻게 물결이 점점 커지는지, 그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문제를 하고 있었네. 나는 그가 “자기가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들고 내게 왔기 때문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지.
하지만 자네와의 경우에는 내가 실수를 했네. 자네가 스스로 문제를 찾게 두지 않고, 내가 문제를 쥐여주어 버렸지. 그러면서 자네에게 무엇이 흥미롭고 즐겁고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남겼네. (즉, 자네가 뭔가 해볼 수 있다고 “보이는” 문제들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점 말일세.) 미안하네. 용서하게. 이 편지로 그 잘못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라네.
나는 자네가 ‘하찮다’고 부를지도 모를,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연구해 왔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매우 즐겁게 했고, 때때로 부분적으로나마 성공할 수 있었기에 아주 뿌듯했지. 예를 들면, 마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도로 연마된 표면에서 마찰계수를 실험한 적이 있네. (실패했지.)
또는, 결정의 탄성 특성이 그 안의 원자들 사이의 힘에 어떻게 의존하는지, 도금한 금속을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 물체(예를 들면 라디오 노브)에 잘 달라붙게 할 수 있는지, 우라늄에서 중성자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유리 표면에 얇은 막을 입혔을 때 전자기파가 어떻게 반사되는지, 폭발에서 충격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중성자 계수기를 어떻게 설계할지, 어떤 원소들은 왜 K-오비탈이 아니라 L-오비탈의 전자를 포획하는지, 특정한 종류의 아이들 장난감(플렉사곤이라 불리는)을 종이 접기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일반 이론, 경핵의 에너지 준위, 그리고 몇 년을 쏟고도 아직 성공하지 못한 난류 이론까지 말일세.
이 모든 것에 더해 양자 이론에 관한 ‘더 거창한’ 문제들도 물론 있었고.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문제도 너무 작거나 사소한 법은 없다네.
자네는 스스로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네. 하지만 자네는 아내와 아이에게는 결코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니지. 그리고 자네가 사무실에 찾아오는 동료들의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해 줄 수만 있다면, 자네는 금세 그들에게도 더 이상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니게 될 걸세. 자네는 나에게도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니네.
무엇보다 자네 스스로에게 이름 없는 사람으로 남지 말게나. 그건 너무나 슬픈 삶의 방식일세. 세상에서 자네의 자리를 알고, 자네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게. 젊은 시절 자네가 품었던 순진한 이상을 기준으로도, 또 자네가 잘못 상상하고 있는 “스승의 이상”을 기준으로도 평가하지 말고 말이네.
자네의 행운과 행복을 빌겠네.
진심을 담아,
Richard P. Feynman 드림.
우리는 정말 손쉽게 세상의 기준으로 "가치 있는 문제"를 쉽게 정의하곤 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장 익숙하게 접한 기준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래는 각자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문제가 다르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있다.
- 서로가 얻을 것이 있는, 즉 "윈-윈, Positive-sum game"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문제.
- 시간 관리 관점에서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는 문제.
이러한 "가치 있는 문제"는 누군가에겐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문제", "밝혀지지 않았던 세상의 진리를 파헤치는 문제"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스스로 자신의 기준을 선택하는 것은, 한번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즉, 파인만이 말했듯 남이 시키는 일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세상의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민해봐야 가능하다.
이 편지를 읽고,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고민을 한 것이 나 뿐만이 아니고, 지난 시간이 무가치하지 않았음을 증명받은 기분이기도 하다.
두서없지만, 결론은 이렇게 내리고 싶다.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정의하자.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 행복하게 살자.